[발췌]


소통의 단절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체주의적인 공간에서 지내게 된다. 이런 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대기업과 공무원과 대형 쇼핑몰을 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의 학교 건축은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어른을 양산해 낼 수박에 없다.


우리나라도 70년대까지만 해도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30분 정도 늦게 약속 장소에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역시 농경 사회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사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9시까지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을 길러 내기 위해 어려서부터 교육할 필요가 생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초등학교'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학교교육을 의무로 만들고 시민들을 교육시켜 직업을 가지게 했다. 동시에 낮 시간에 학생들을 학교에서 지내게 함으로써 부모들이 일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학교는 사회 유지를 위한 장치다.


현대인들이 TV를 많이 보는 이유가 마당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마당에서는 사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하고 시시각각 다른 태양빛이 들지만 거실에는 변화가 없다. 변함없는 벽지와 항상 똑같은 형광등 조명 뿐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유일하게 화면이 변하는 TV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진다.


우리가 아이들을 실내 공간에 가두다 보니 그들이 갈 수 있는 변화의 공간은 게임 같은 사이공간밖에 없는 것이다.


로비터 거트만에 의하면 '1,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고 한다.


조운 메이어스 - 레비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3미터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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